친일경찰 착혈귀 하판락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혀를 내두를 친일 행위를 내세우며 프로 고문러로 활약한 친일경찰 하판락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의 악랄한 고문 행태는 2018년 이광우 투사의 아들 부산에 거주하던 이상국 씨를 통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하판락은 외사계 주임으로 현재 경감의 위치로 말할 수 있는 경부보 라는 불리는 직급을 가지고 있던 친일 경찰입니다. 독립투사들은 물론이고, 죄 없는 사람들에게 모진 고문을 일삼았으며, 그가 착혈귀라고 불렸던 이유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의 피를 직접 뽑아 몸에 뿌리는 착혈고문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 부터 해방된 후, 이광우 투사는 1949년 반민특위에서 하판락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는데요, 모든 친일 행위를 범했던 인간들이 그러하듯 하판락 또한 자신의 고문 사실을 전면 부정하였습니다. 심지어 하판락은 1956년에 친일활동을 통해 끌어모은 재산으로 경상남도 의원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대한노인회 수영구에서 지회장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역임했다는 사실도 이광우 투사의 아들 이상국 씨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1997년에는 지역 경로당 건설을 위해 100만 원을 기부하여 부산시장 측에서 표창장을 수여받기도 했고, 완벽하게 신분 세탁에 성공해, 사회에 공헌하는 모습을 보여 박수를 받기도 했는데요. 90년대 즈음에는 여전히 친일행적을 했던 인물들이 재산을 끌어모아 호위호식하며 부귀를 누리고 사회적 지위를 얻었으며, 명예로운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그들에게 접근하근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광우 투사를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하판락과 무려 10년 이라는 세월 동안 줄다리기를 해온 아들 이상우 씨의 노력으로 기자들과 함께 하판락의 집을 직접 찾아가 단판을 지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판락은 당시 고문 사실을 끝까지 전면 부인했고, 다만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김소복이 실질적인 고문기술자였으며, 자신은 고문을 지시한 것뿐이라고 유체이탈 화법을 시전 한 것입니다.
하판락은 일제시대 때 가와모토 한라쿠, 가와모토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던 인물로, 1912년 2월 15일 출생한 자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온갖 명예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2003년 9월 11일 91 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요, 세월 탓일까요? 사망 3년 전인 2000년 1월 17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경 간부를 지낸 과거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본 분들께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라며, 어영부영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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